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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초학

본초구진 [本草求眞 叙本] (26.05.22.)

by 한의사 김재준 2026. 5. 22.

維乾隆三十有七年. 恭逢聖天子稽古右文. 特詔徵購遺書. 用儲乙覽. 而余以向任館職. 奉上游委以彙覈之任. 凡江右諸書所得見者. 幾千百種. 其間純駁互出. 固不盡不朽之業. 然巨編單帙. 盈積箱案. 固已顯晦無遺矣. 得與寓目者. 洵洋洋乎大觀也哉. 宜黃黃太學宮繡. 以其故父爲鶚所著理解體要二卷. 幷所自著醫學求眞錄數卷. 並本草求眞數卷. 來上兼請叙. 余惟義理之瘧. 至宋儒而大明. 發明宋儒至蘊. 更元明諸儒而大備. 宜黃古臨川郡也. 計是郡之談理者. 宋有象山. 元有草廬. 明則康齊. 皆以絶人之資. 發其自得之學. 黃君之書. 其資旣與數先哲相若. 且能於章句訓詁之餘. 不溺於口耳詞華之習. 薈粹儒家者流以爲此書. 可不謂能自拔於流俗之外者歟. 太學於敬讀父書餘暇. 肆力幹岐. 夫古人以良醫之功. 此方良相. 蓋古仁者. 及人利物之心. 類如是耳. 否則博旋惠衆. 其事靡窮. 而良相良義. 厥人有數. 矢願固谹. 恐反於仁之術隘矣. 今太學之爲此書也. 於史爲方技家言. 而能歸重立品正情. 則不獨藉以寄其良相之思. 亦將自薄其近譬之念. 固迵與世之鬻技者殊矣. 爰不卻其請. 以所上二書. 郵申書局. 以備採擇. 而幷叙其槪如此云. 時乾隆三十八年季冬月賜進士出身誥授中憲大夫江西分巡廣饒九南兼管水利兵備道加二級紀居汪官翰林院侍講左春坊贊善翰林院編條江寧秦承思撰.

 생각건대 乾隆 37년에, 거룩하신 천자께서 옛것을 상고하고 문풍을 숭상하시는 성대함을 공경히 맞이하여, 특별히 조서를 내려 세상에 남아 있는 책을 징집하고 구입하게 하시어 황제의 열람용으로 저장하게 하셨다. 이에 나는 예전에 한림원의 관직에 있었던 인연으로, 상사의 명을 받들어 서적을 모아 검토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대개 江右의 여러 서적 중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이 거의 수천 수백 종에 달했는데, 그 사이에는 순수함과 잡박함이 서로 섞여 있어서 진실로 모두 다 불후의 업적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방대한 책과 낱권의 책들이 상자와 책상에 가득 쌓여 진실로 이미 세상에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이 남김없이 다 모였으니,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넓고도 웅대한 장관이었다. 의황현의 태학 황궁수가 그의 돌아가신 아버님 황위악이 지은 ‘理解體要’ 2권과 함께, 자신이 직접 지은 ‘醫學求眞錄’ 수 권, 그리고 ‘本草求眞’ 수 권을 가지고 와서 올리며 아울러 서문을 청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의리의 학문은 송나라 유학자들에 이르러 크게 밝아졌고, 송나라 유학자들의 지극히 깊은 속뜻을 밝혀낸 것은 원나라와 명나라의 여러 유학자들을 거치며 크게 구비되었다. 의황은 옛 임천군이다. 이 고을에서 성리를 논한 이들을 헤아려 보면 송나라에는 象山이 있었고, 원나라에는 草廬가 있었으며, 명나라에는 康齊가 있었으니, 모두 남들보다 뛰어난 자질로 스스로 터득한 학문을 발명한 이들이다. 황군의 책을 보니, 그의 자질이 이미 앞서 말한 여러 선철들과 어슷비슷하며, 또한 장구와 훈고를 공부하는 틈틈이 입과 귀로만 외우고 화려한 문사만을 일삼는 습속에 빠지지 않고, 유가 무리의 학설을 모아 모아서 이 책을 만들었으니, 참으로 유속 밖으로 스스로 벗어난 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태학은 아버님의 책을 공경히 읽는 여가에 기백의 의학에 힘을 쏟았다. 무릇 옛사람들은 훌륭한 의사의 공로를 훌륭한 재상에 비유하곤 했으니, 대개 옛 어진 이들이 사람에게 미치고 만물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이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널리 베풀어 대중을 은혜롭게 하는 그 일은 끝이 없겠으나, 훌륭한 재상과 훌륭한 의사는 그 사람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 화살을 쏘듯 세운 원력은 진실로 넓고 크지만, 도리어 仁을 행하는 방법이 좁아질까 염려된다. 이제 태학이 이 책을 지은 것은 사서의 분류로 보면 方技家의 말에 해당하지만, 능히 품격을 세우고 감정을 바르게 하는 데 비중을 두었으니, 비단 이 책을 빌려 훌륭한 재상이 되고자 하는 생각을 기탁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장차 의술을 하찮은 비유로만 여기는 생각을 스스로 엷게 만든 것이라, 진실로 세상의 기술을 파는 자들과는 멀리 조연히 다른 것이다. 이에 그의 청을 물리치지 않고, 올린 바 두 종류의 책을 서국에 우편으로 보내어 채택되도록 대비하게 하는 한편, 아울러 그 대강을 이와 같이 서문으로 적는 바이다. 때는 乾隆 38년 늦겨울, 진사 출신을 수여받고 고명으로 중헌대부를 제수받았으며 강서분순광요구남 겸관수리병비도 관질에 紀 2급이 더해지고 居汪이며 관직이 한림원시강 좌춘방찬선 한림원편수인 강녕 사람 秦承思가 짓다.

본초 원전 연구를 통한 한의학 지식 지도 구축 기록 - 한의사 김재준